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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s in Daily Life/One-day Event

[2022. 04. 21] 그냥 끄적이는 제주올레길 1 코스 트래킹 후기

by Rosmary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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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사에서 필자의 공식 근무 종료일은 4월 30일이나, 일하면서 연차를 5개도 못 쓰고 밭 가는 소처럼 일만했던 터라, 퇴사 전 남아있는 연차를 모두 소진하게 되었다(그 와중에도 일 때문에 13일 남은 연차 중 3개는 쓰지도 못하게 된 것은...ㅠ).

30대 들어서 이렇게 2주 가까이 시간이 남는 일이 없어 뭘 할까 고민하다가, 6년 전 배낭하나 매고 떠났던 유럽 여행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다시 느끼고 싶어 혼자 길게 여행을 훌쩍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가 어느정도 종식되는 상황이라 해외로 나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유럽은 한 번 가 봤던 데다 너무 멀고, 동남아는 푸켓을 제외하면 음성 확인서를 비싼 돈 주고 끊어야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일본은 아예 7일 격리를 해야했고...

차선책으로 국내에서 가장 해외같은 제주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름 자연 속에서 생각도 정리하고 힐링도 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근무일까지도 너무나 다이나믹한 상황이 벌어져 필자는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 되어서야 제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당연히 제주도에서의 계획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말이다.


하여간... 수요일 저녁에 제주도에 떨어져 급하게 숙소를 하나 잡고, 내일 뭐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 렌트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려 했는데, 렌트카는 이미 빌리기가 너무 힘들어진 상태라, 버스와 걷는 것으로 여행을 해야할 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6년 전이랑 똑같이 배낭 매고 버스타고 걸어다니면서 구경하지 뭐..."

제주도에 도보 여행객이 걸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을까? 찾아보니 올레길이란 것이 있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바로 올레길 1코스가 위치한 동쪽 시흥리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1. 제주시 -> 시흥리 이동:

일어나니 뭔가 숙소 방이 굉장히 어둡다. 필자는 블라인드 치고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밝으면 눈을 뜨는데, 이상하게 어두워서 창 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첫 날 부터 비라니... 이미 올레길이 끝나는 지점 근처 게스트하우스도 이미 예약한 상태라, 안가기에도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다. 별 수 없지...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온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보니, 고기국수라는 것이 꽤 많이 있던데, 그 중 24 시간 장사를 하는 집으로 들어가 아침으로 비빔국수 하나를 먹는다. 요즘 아침 잘 안 먹는데, 비가 오다보니 조금 먹어둬야할 듯 해서 말이다. 오전 10시도 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아주 간만에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고 제주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제주 버스들이 배차간격이 꽤나 길다던데, 다행히 필자가 이 날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마침 출발을 위해 터미널 안에서 대기중이다. 바로 버스에 올라탄다.

비가 와서 그런지 버스 안에서 졸음이 계속 쏟아진다. 두 시간 정도 지나니 버스가 시흥리 정류소 근처까지 온다. 아직까지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는다.

정류소를 배경으로 올레길 출발지로 가는 중에.


첫 여행부터 여러모로 힘들겠다 싶다. 비가 오전에 제주시를 출발할때보다 더 많이 온다. 하필이면 출발 전 일기예보에 일주일 내내 맑음이라는 기상 예보를 보고 우비와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옷(참고로 6년 전 유럽여행 때 들고갔던 옷이다)을 챙겨오지도 않았다. 필자가 항상 가방에 꽂아 들고다니는 작은 우산 하나만이 쏟아지는 비로부터 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비오는 날의 제주 경치를 즐기기로 하고 올레길 안내소로 이동한다.

제주 특유의 돌담이 길 가를 따라 쌓여있다. 들판은 이름모를 풀과 꽃이 빗물을 머금고 생생한 자태를 뽑내고 있다. 우산 쓰고 걸은 지 약 15분 정도 되었을까. 올레길 안내소가 눈 앞에 나타난다.


안내소에 들어가니 직원 한 분이 반갑게 맞아준다. 스탬프를 찍을 올레길 패스포트를 사고 발 뒤꿈치에 반창고를 붙이며 본격적인 트래킹 준비를 시작한다. 우연인지, 직원분이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오래 있다가 제주로 넘어오신 분인 것을 알게되어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제주 올레길 제 1코스는 시흥리에서 오름 하나를 둘러 종달리로 나간 뒤, 동해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쭉 따라가는 경로다. 따라서 첫 부분인 오름 부분만 제외하면 고도차가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직원분도 오늘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비가 올 때 더 힘드는 것을 아셔서인지 에너지 바 몇 개를 챙겨주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안내소 밖을 나온다.

참 운이 좋은게, 밖으로 나오니 안내소로 들어올 때만 해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쳤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구름이 많이 드리워진 상태지만 구름이 걷히는 중인지 점차 밝아지고 있다. 비가 그쳐져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트래킹을 시작한다.


다행히 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이 크게 미끄럽지 않아서 20분도 안되어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봉우리를 넘고나니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숲 길을 조금 지나니 작은 개활지가 나타난다. 비가 와서 촉촉한 풀들이 햇살을 받으니 생생한 봄기운이 뿜어져나온다. 필자가 감탄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만, 카메라는 이 기운을 모두 담지 못한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아니면 늙은 건지 카메라가 이렇게 기운것도 몰랐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오름에서 내려와 종달리로 들어가는 초입에 도착한다. 제주 봄 햇살이 생각보다 따가웠지만, 비가 오고 난 직후인데다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불어 참 상쾌한 기분으로 트래킹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도시의 빌딩숲만 내내 봐왔던 탓인지, 간만에 깨끗한 전원 풍경을 보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에 항상 눌리며 압박받던 기분이 훌훌 날아가니 마음에 평온만 남는다. 그렇게 시골 경치에 흠뻑 빠져 걷다보니 어느새 제주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난다.

오늘 목적지 근처인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지금부터는 지도에 의지하지 않고 해안 도로만 쭉 따라 내려가면 된다. 올레길 첫 코스라 그런지, 경로를 일부러 쉽게 설정해놓은듯 하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바닷가에 발을 담그거나 하는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올레길 1 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는 지점인 목화휴게소가 나타난다. 휴게소 치곤 사이즈가 큰 편은 아니다. 시골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간식을 사 자리를 꽤 많이 차지하고 있다. 원래 여기서 스탬프 찍고 한 번 쉬어가려 했는데, 금방 자리가 날 듯 할 것 같지는 않아 바로 출발한다.

어?? 왜 친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는 맑게 개였다. 필자가 체코 미쿨로브에서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을 터뜨렸던 그 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아름다운 날이었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마스크도 간간히 빼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계속 걸어간다.


술이 아닌 경치에 취해 걷기를 다시 한 시간 반, 성산 시내가 살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콩알만하게 보이던 성산일출봉이 점점 거대하게 다가온다. 목적지인 광치기 해변까지는 이제 대략 2~3km 정도 남은 지점이다.


목적지로 가는 경로에 성산유채꽃밭이 있어 잠깐 들르긴 했는데, 생각보다 유채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올레길 1 코스의 종점인 광치기 해변에 도착했다. 이 해변이 밀물일때는 일반 해변과 다를 바 없지만, 썰물때는 물 속에 숨어있던 현무암 지형이 드러나면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해변 배경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필자는 사진 대신 올레길 마무리 스탬프를 찍고 잠시 해변에 앉아 멍을 때리며 쉰다.


* 걸은 거리: 15.1 km
* 출발 시간: 2022년 04월 21일 13시 30분
* 도착 시간: 2022년 04월 21일 16시 14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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