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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s in Daily Life/One-day Event

[2022. 04. 22] 그냥 끄적이는 제주올레길 1-1 코스 트래킹 후기

by Rosmary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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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코스 완료를 하고 하루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을 진탕 마셨더니 아침이 힘들다. 같이 술을 마신 투숙객들이 대부분 비슷한 나이대였던대다, 기혼자 한 명을 제외한 5명이 솔로였고, 퇴사를 하거나 앞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도 있었고 심지어 여자 투숙객이 없어 - 서로 슬픔을 풀기 위해(?) - 술만 냅다 들이켰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해야하니 축 쳐지는 몸을 냉수 한 잔으로 깨워 억지로 움직인다. 다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온다.


다시 성산읍으로 나오는 길. 어제 오후와 마찬가지로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반대로 속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 이 폭풍을 또똣한(?) 국물로 가라앉히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되도록이면 해장할 수 있는 국밥 종류를 먹고 싶었는데, 특이하게도 국밥을 파는 가게가 찾기 힘들다. 읍내 시내로 들어오니 자그마한 분식점이 하나 보이는데, 냅다 들어가서 라면 하나를 시킨다.

라면을 먹으면서, 오늘은 어디를 가야할 지 고민한다. 원래는 올레길 2코스를 바로 갈까 했지만, 몸 상태로 영 메롱이라 산을 크게 넘어야 하는 2코스는 무리일 듯 했고, 심지어 2코스 시작지점인 광치기해변에서 너무 멀리까지 왔다(그 놈의 술이 문제다). 인터넷으로 조금 뒤적거리다보니, 우도에도 올레길 코스가 하나 있는데, 마침 여객 터미널도 근처였고, 코스 거리가 그닥 길지는 않은 듯 해서 우도로 가기로 결정한다(참고로 필자 MBTI는 INFJ다. 그런데 여행만큼은 어째서인지 계획이 없이 즉흥적이다).

성산 여객 터미널에서 우도를 가는 배편은 30분에 한 대 꼴로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우도로 들어가려는 여행객도 상당히 많다. 필자는 다행히도 터미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항하는 배가 있어, 큰 기다림 없이 우도로 입도할 수 있었다.

우도로 가는 배 위에서 제주도를 배경으로. 술 먹고 멀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출항하고 20분 정도 지나니 우도 선착장에 배가 정박한다. 노르웨이에서 몇 번 피오르드 건너갈 때 탔던 배와 유사한 모양이라 그런지, 우도로 가는 배가 그렇게 낮설지가 않다.


우도에 발을 딛자마자, 가장 먼저 올레길 시작 스탬프부터 찾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도의 올레길 시작점은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 군데가 있는데, 두 항구 모두 시작 및 도착 스탬프가 비치되어 있다. 필자는 하우목동항에 발을 딛었는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올레길 시작점 표시와 스탬프 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우도 여행객들은 필자처럼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기차나 전기 스쿠터를 빌려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별 수 없이, 그냥 트래킹을 시작한다. 천진항에 가서 스탬프를 찍자는 생각으로. 필자는 올레길을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로 결정하고 출발한다.

걷기 시작하고 바다 외에 필자를 먼저 맞이한 것은 제주 조랑말(마치 노새 또는 망아지 느낌이다)이었다. 여행객을 대상으로 승마를 하기 위해 대기중인 녀석인 듯 한데, 봄 햇살과 바닷바람이 포근하다보니 졸음이 쏟아지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냥 졸고 있는 말이 귀여워서 한 컷.


신기하게도 제주도 본 섬보다 우도가 유채꽃이 더 활짝 피어있었다. 푸른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유채꽃이 만개한 풍경이 연애세포가 파괴된 30대 남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이런 거에 설렐 때가 아니지 않나...)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전기 스쿠터나 차량을 빌려 해안도로를 따라가기 때문에, 올레길 코스 내의 거주 구역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걷는 여행이 참 좋은 이유는 그 지역의 토착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생생히 눈으로 보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돌담 너머로 들려오는 빨래를 두들기는 방망이 질이 봄 바람을 타고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다시, 유채꽃밭. 제주도도 유채꽃이 상당히 유명하다는데, 필자는 우도 유채꽃이 훨씬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게 걸어가다보니, 약간 언덕진 곳 위에 쉼터가 하나 보이고, 그곳에서 돌담길 사이로 올레길 코스가 꺾인다. 위의 사진 오른쪽이 그 부분인데, 4월임에도 불구하고 풀과 이름모를 식물이 너무 많이 자라 걸어갈 수 없을만큼 길이 좋지 않았다(솔직히 관리의 측면에서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차선책으로 올레길 코스를 조금 벗어나 해안가를 따라 조금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어제는 비가 와서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늘은 제법 햇살이 따갑다. 바닷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긴 팔을 입으니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이 반팔로 트래킹을 진행한다(숙소로 돌아와 팔을 확인해보니 아주 새까맣게 타버렸다).


길을 돌아 걸은지 한 30분이 되었을까. 해안도로가 동쪽에서 남쪽으로 꺾이면서 해수욕장이 물 건너로 보인다. 올레길 중간 스탬프가 있는 하고수동 해수욕장이다. 거의 쉼없이 걸어온 탓에 조금은 쉬었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파제 위에서 제주 바다를 보면서 다리를 주무른다.

배낭 무게가 7kg 밖에 안 나가는데 꽤나 힘들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15kg를 어떻게 들고 다녔던걸까?

10분정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고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레길 표식인 파란색/주황색 리본 띠를 발견했다. 그리고 약 10분을 더 걸어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여기도 스탬프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식당 앞에 있다는데, 그런 이름을 가진 식당이 중심지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뭐야 이거... 사기 아니야?? 이왕 스탬프 못찾은 거 걸어다니면서 우도 경치나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빠져나와 다시 길을 걷는데, 해수욕장 거의 끝 부분에 위치한 어떤 식당 앞에 올레길 중간지점 인증 스탬프함이 있는 것을 아주 우연찮게 발견했다. 매우 반가운 마음과 함께 스탬프를 제주패스에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름모를 꽃과 들판, 바다를 배경으로 몇몇 가정집들이 상당히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집이 위의 사진과 같은 집들인데, 언제 돈 벌어서 이런 곳에 집을 하나 장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돌아가면 열심히 일해야지.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보니, 올레길이 해안도로가 아닌 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우도 남쪽의 높은 봉우리를 지나는 듯 한데, 건조하고 더운 날씨에 10분 휴식이 전부였던데다, 코스에 산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 못했던 필자는 이걸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심각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이 산을 넘지 않으면 더 많이 걸어야했다. 그냥 올라간다.


지친 다리를 달래가며 산 중간 지점까지 다다르니, 필자가 걸어왔던 길을 배경으로 우도의 풍경이 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편은 목초지가 있었는데, 말 몇 마리가 너른 목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햇살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높게만 보였던 봉우리 정상에 다다랐다. 정식 명칭은 쇠머리오름이고, 이 오름 위에 우도 등대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등대라는 안내판을 본 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관이 상당히 깔끔한 편이다.


꼭대기에 올라온 김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조금 쉬어 가려했지만, 햇살을 막을 그늘이 하나도 없어 경치 구경 조금 하다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오름 중턱까지 내려오니 왠 등대 조형물이 나란히 배치된 것이 보인다. 목포, 울산 등 국내 등대 뿐만 아니라 해외 주요 도시의 등대를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다. 송진가루가 조금 날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벤치와 그늘이 있어 잠시 목을 축이며 쉬어가기로 한다.


15분 정도 쉬고 오름을 내려온다. 특이하게도 올라갈때는 그렇게 오래 걸리던 길이 내려오는 건 금방이다. 내려와서 오름 능선을 사진으로 찍어보는데 이렇게 금방 내려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아 보인다.

오름을 내려와 정처없이 걷다보니, 왠 숲길을 지나, 워터파크(독일어로 지어진 이름이던데 기억이 안난다)를 지나, 큰 도넛가게를 지나 어느덧 천진항에 도착한다.

천진항 부둣가쪽으로 가니 하우목동항과는 달리 올레길 스탬프가 아주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해 있다. 혹시 모르니 출발 스탬프와 도착 스탬프를 찍어놓는다.

대략 3/4 정도의 코스를 마친 상태였는데, 이 때까지 필자가 먹은 것이라고는 스포츠 음료 700mL 정도가 전부다. 배를 조금 채우고 싶었지만 더위가 우선이라 우도에서 유명한 땅콩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어본다. 가격은 5,000원.

맛있기는 한데, 땅콩이랑 가루때문인지 조금 텁텁한게 필자 상황에 좋지 않았다. 그냥 한라봉 아이스크림을 먹어볼걸.
다시 하우목동항으로 발걸음을 뗀다.


천진항에서 하우목동항으로의 올레길 역시 해안가만 쭉 따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해안가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논밭 돌담길과 거주지를 관통하도록 길이 꺾인다. 필자는 어제 술이 문제인지, 밥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허벅지 근육에 살살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조금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Trio Toykit의 Met by Chance를 들으며 리듬에 맞춰 걷는다. "올레길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실없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오후 3시 40분 전후. 하우목동항을 목전에 두고 서빈백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특이하게도 이 해변은 다른 해변보다도 연애중인 커플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쳇, 좋을 때다ㅋㅋ.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그리고 눈꼴 시려운 상황도 되도록 보지 않기 위해?) 최종 목적지인 하우목동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하우목동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많이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먹고싶다기보다 빨리 씻고싶다는 생각만 엄청나게 든다.

필자는 우도 배편을 왕복으로 끊어 승선 전 승선 신고서만 작성하면 되었다. 승선 신고서는 매표소 역할을 하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에 비치되어 있다. 승선 신고서를 작성해서 손에 들고 선착장 끝으로 가는 길에, 올레길 스탬프 함을 발견한다. 우도에 발을 딛고 그렇게 찾아 해메던 스탬프 함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니 웃음밖에 안나온다.


* 걸은 거리: 11.8 km
* 출발 시간: 2022년 04월 22일 13시 45분
* 도착 시간: 2022년 04월 22일 16시 12분
* 난이도: 올레길 1코스와 비슷하지만 중간에 오름이 있고 길찾기가 쉽지 않아 체감상 1코스보다 조금 더 힘듬.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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